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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개업 축하 시 시집이 무겁다

이름건축가 2025. 4. 1.

책을 덮고 나면 가슴이 싸해진다.
강보원 시인의 첫 시집 『완벽한 개업 축하 시』를 읽고 나면 그렇다. 이 시집은 감정을 조곤조곤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무심한 척, 툭 내던진 언어로 독자의 속을 천천히 긁는다. 그중에서도 「지구에 사는 어떤 신의 영수증」이라는 시는, 형식부터 메시지까지 모든 것이 낯설다.


영수증 위에 시가 있다?

영수증 시
시의 전문

시를 읽기 전에는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영수증이 어떻게 시가 돼?’ 그런데 강보원은 그것을 해낸다. 그는 ‘합계 375,800원’, ‘결제액 375,800원’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숫자 위에, 이렇게 적는다.

적자, 적자, 다음 달엔 꼭……

이건 농담이 아니다. 이건 한 달을 버티고 있는 누군가의 진심이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영수증의 주인이 ‘신’이라는 설정이다.
‘지구에 사는 어떤 신’이 적자를 본다. 신조차 수지타산을 계산하고, 다음 달을 기약한다. 얼마나 슬프고, 또 웃긴가.


슬픔을 '청소'하는 방식

강보원의 시는 슬픔을 ‘청소’한다. 감정을 정리하거나 회상하지 않고, 마치 청소하듯 털고, 닦고, 물걸레질하듯 쓸고 간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시에는 흔히 말하는 서정이 없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깊은 서정이 있다.

그의 시는 말하지 않지만, 너무 많은 것을 말한다.

「지구에 사는 어떤 신의 영수증」에서 우리가 만나는 것은, 경제적 압박과 생존의 무게를 ‘적자’라는 단어 하나로 툭 던지는 감각이다.
이 시는 감정의 묘사가 아니라, 감정의 흔적을 보여준다. 지우고 남은 자국처럼, 말하고 난 뒤의 침묵처럼.


시의 형식을 깨는 실험

 

시인은 이 작품에서 전통적인 시 형식을 과감히 무너뜨린다. 시가 아니라 ‘문서’, 그것도 ‘영수증’이라는 형식을 차용한 것만으로도 낯선데, 그 위에 낙서하듯 빨간 색연필로 적힌 문장은 독자를 순간 멈춰 서게 만든다.

‘이건… 시인가?’
맞다. 시다.
그러니까 더 놀랍다.

이 시는 읽는 것이 아니라 직면하게 된다.

이러한 시도의 진짜 가치는 ‘문학은 꼭 어려워야 하는가’ 혹은 ‘시는 꼭 아름다워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이 된다.
아니다. 시는 ‘진짜’면 된다. 강보원은 그것을 알고 있다.


신은 왜 영수증을 갖고 있을까?

이 시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아마 이거다. 신은 왜 영수증을 갖고 있을까?
그것도 적자가 찍힌 영수증을.
그것은 아마도 지금 이 지구에 사는 우리 모두가 신의 관점이 아니라, 신도 우리의 관점으로 내려와야만 이해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시의 ‘신’은 전지전능하지 않다. 그는 유한하고, 피로하고, 월말에 장부를 맞춰야 하는 존재다.
그리고 그 신의 낙서는, 곧 우리의 한숨이다.


색다른 시, 새로운 언어의 시도

 

『완벽한 개업 축하 시』는 강보원이 처음 세상에 내민 이름표이자, 문학을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에 대한 선언문이다.
그의 시는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말들, 구조들, 감정들을 내민다. 하지만 그것은 그만의 방식으로, 우리 마음 가장 밑바닥의 이야기를 들춰낸다.

「지구에 사는 어떤 신의 영수증」은 그 대표적인 예다. 웃기지만 눈물 나는, 무심한 듯 다정한, 낯선데 너무 익숙한 시.
그 시 한 편이면 충분하다. 강보원이 시인이라는 걸, 그리고 이 시집이 왜 특별한지를 알기에.


마무리하며: 시를 ‘감상’ 말고 ‘경험’하라

이제는 시를 ‘읽는다’는 말보다 ‘경험한다’는 말이 더 어울리는 시대가 온 것 같다.
강보원은 그 중심에 있다. 그가 보여준 시의 새로운 방식은, 앞으로 우리가 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힌트를 준다.

그러니 당신도 한 번 영수증을 들여다보자. 그 안에 신의 고민이, 당신의 한숨이, 그리고 아직 지워지지 않은 다음 달의 희망이 적혀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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