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먹고 사는 나라 한국 바뀌지 않는 현실
죽어야만 움직이는 나라, 한국
오요안나 사건이 던진 묵직한 질문
최근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뜨린 오요안나 사건은 단순한 개인의 비극을 넘어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다시금 부각시켰다. 직장 내 괴롭힘이 지속적으로 은폐되었으며, 피해자가 살아있을 때는 철저히 외면당하다가, 죽고 나서야 사회적 관심을 받으며 법과 제도가 논의되는 현실. 이는 결코 새로운 일이 아니다. 한국 사회는 왜 살아있는 사람의 외침을 외면하고, 죽음 이후에야 뒤늦은 대책을 논의하는가?
산 사람의 말보다 죽은 사람의 유서가 더 강한 나라
대한민국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피해자들은 항상 살아있는 동안에는 ‘예민하다’는 비난을 받는다. 직장 내 괴롭힘, 학교 폭력, 군대 내 가혹행위, 산업재해 등 수많은 사건에서 피해자들은 자신들의 고통을 이야기했지만, 문제 해결은커녕 오히려 조직적인 은폐와 2차 가해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한 사람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 그제야 여론이 들끓고, 언론이 보도하며, 정치권이 나서 법과 제도를 손보겠다고 한다. 오요안나 사건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살아있는 동안 회사의 부당한 대우에 대해 호소했지만,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가 떠난 후에야 대중의 관심과 공분이 폭발했다.
이런 현상은 반복적으로 되풀이된다. 2014년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정부는 긴급 복지 지원책을 손질했다. 2016년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의 죽음 이후에야 정부가 본격적으로 대책 마련에 나섰다. 2017년 故 이민호 군의 사망 이후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되었고, 2021년 故 김용균 노동자의 사망이 있은 후에서야 중대재해처벌법이 도입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피해자들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사회적 관심도 없고, 법적 보호도 미비하다.
'사후약방문'의 악순환, 왜 끊어지지 않는가?
이런 악순환이 계속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 제도보다 조직의 이익이 우선되는 문화
한국 사회에서는 내부 고발자나 피해자의 목소리가 조직 전체의 문제로 인식되기보다는,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되기 일쑤다.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불편한 존재가 되고, 조직의 평판과 안정을 이유로 피해 사실이 묵살된다. 이러한 문화가 유지되는 한, 산 사람의 목소리는 힘을 얻기 어렵다. - 정치권과 정부의 ‘사건 대응’식 법 개정
우리 사회는 예방보다 사후 대응에 익숙하다. 큰 사건이 터진 후 여론이 들끓으면 정치권이 나서 법을 개정하지만, 실질적인 시행과 감시는 미흡하다. 결국 비슷한 사건이 다시 발생하고, 또 다른 희생이 나와야만 다음 대응이 이뤄진다. - 언론과 대중의 단기적 관심
언론은 사건이 터지면 집중 보도하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관심이 사그라든다. 대중 역시 일시적인 분노를 표출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른 이슈에 관심을 돌린다.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전에 관심이 식어버리니, 문제 해결도 더디다.
죽기 전에 보호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려면
더 이상의 희생이 나오지 않으려면,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 피해자의 목소리가 묵살되지 않도록 법적 보호 장치 강화
직장 내 괴롭힘, 산업재해, 학교 폭력 등 피해자의 신고가 불이익으로 돌아오지 않도록 강력한 보호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내부 고발자 보호법을 강화하고, 피해자 지원 체계를 개선해야 한다. - 사건 발생 전 예방 시스템 확립
사후 대책이 아니라, 피해자가 문제를 제기했을 때 즉각적인 조사가 이루어지고, 조직 차원에서 문제 해결에 나서는 구조가 필요하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을 강화하고, 노조 및 노동 인권 기구의 실질적인 권한을 확대해야 한다. - 대중과 언론의 지속적인 관심 유도
특정 사건이 터질 때만 반짝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사회적 의제로 유지할 수 있도록 언론과 시민 사회가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더 이상 '죽어야만' 바뀌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오요안나 사건을 통해 우리는 또 한 번 똑같은 질문을 던진다. 왜 피해자가 살아 있을 때는 듣지 않다가, 떠난 후에야 움직이는가? 더 이상 ‘사후약방문’식 대처가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피해자가 목소리를 냈을 때 즉각적인 보호와 조치가 이루어지는 사회, 사망 후에야 법이 개정되는 것이 아니라, 미리 예방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또 다른 오요안나를 잃고 나서야 후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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